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레슨9. 트릴

제대로 연주한 트릴은 장식음과 달리 엄격함과 긴장, 기대감, 향수, 혹은 종결의 느낌까지 담아내는 음악을 지배하는 요소임. 트릴의 힘은 그 순간에 얼마나 설득력 있게 스며드느냐에 달려 있음. 음악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났다가 사라져야 하며, 프레이징과 분리해서 별개의 테크닉으로 다루면 소리만 분주해질 뿐 음악은 살아나지 않음.

손가락의 빠른 타건은 인체가 수행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운동 중 하나이며, 반복해도 쉽게 지치지 않는 특성이 있음. 그러나 모든 손가락이 같은 속도와 독립성을 지닌 것은 아님.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도 손가락별 속도 차이가 있어서, 두 손가락만으로 트릴을 지속하면 결국 느린 손가락이 전체 흐름을 제약하게 됨.

그래서 쇼팽은 세 손가락 이상을 사용하는 트릴을 제안함. 겉보기에는 복잡해 보이지만, 실제로는 훨씬 자연스러운 해결책임. 여러 손가락을 번갈아 사용하면 더 높은 속도를 유지할 수 있고, 각 손가락이 반복 사이에 충분히 회복할 시간을 확보하게 됨. 동시에 형태가 무너지지 않아 소리의 안정성도 유지됨.

피아노 테크닉의 관점에서 세 손가락 트릴을 안정적으로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는 손가락 테크닉의 완성도를 드러내는 기준이 됨. 이는 테크닉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분명한 차이가 있음. 더 많은 손가락을 사용하면 단순히 속도만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들림. 해부학적으로 다른 구조를 가진 손가락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머를 제어하기 때문임.

트릴 역시 기본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음. 손가락은 기본적인 아치를 유지해야 하고, 움직임은 손 안의 고유근에서 시작되어야 함. 빠른 트릴을 배울 때 흔히 2번과 3번을 과하게 굽히거나, 전완을 회전시켜 손가락을 움직이고, 고유근 대신 큰 근육이 속도를 내는 방식으로 접근하는데, 이런 방법은 속도를 억지로 끌어올릴 수는 있어도 정교함은 떨어짐.

천천히 연습할 때는 각 손가락이 건반에 닿고, 표면을 감지한 뒤, 눌러서 소리를 만들고, 건반을 지탱하다가 다시 놓는 과정을 정확하게 거쳐야 함. 특히 손가락 끝으로 건반을 느끼는 감각은 뇌가 매우 선호하는 입력이며, 이 감각을 바탕으로 손 안의 고유근이 정확하게 작동함.

건반에서 손가락을 떼는 단계 또한 중요함. 건반의 반발력과 손가락의 탄성만으로 기준 위치까지 돌아와야 하며, 전완의 신전근(펴는 근육)을 사용해 억지로 끌어올려서는 안 됨. 손목과 팔, 팔꿈치는 긴장 없이 유연하게 두고, 손가락의 작용에 반응해야 함.

트릴의 핑거링은 앞뒤 음형에 따라 2번과 3번처럼 두 손가락만으로 연주해야 하는 상황도 있음. 하지만, 1번, 4번, 5번 손가락의 속도도 올려놓아야 긴 트릴에서 3-1-4-2나 4-1-3-2 같은 순환 핑거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음. 구조적으로 더 불리하고 어렵지만, 연습을 통해 충분히 개선할 수 있음.


이 글은 dcinside digital piano gallery 의 글을 복사한 것입니다. 관련 질문이나 문의는 우리 갤러리를 방문해주세요.